자성의 길
정광희
중학교 시절 능가사라는 절로 소풍을 갔었다. 절 입구에 작은 개울이 있었고, 그 맑은 물속 안에는 수많은 도자기 파편이 있었다. 건져서 가지고 놀았고, 책상 앞에 두고 관찰했던 기억이 있다. 훗날 분청사기 덤벙 기법으로 만든 파편임을 알게 되었다.
옛 도공이 도자기에 유약을 바를 때, 유약 통에 덤벙 넣었다 빼는 ‘덤벙 기법’은 서예의 일획론과 많은 부분이 일치되어 자연스럽게 연결하게 되었다. 한숨에 긋는 일획처럼 젓가락으로 작은 입체 한지를 집어서 먹물 통에 넣었다 빼는 방법으로 응용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덤벙회화’라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서예는 글이 없어도 되고, 붓이 없어도 충분하다. 이유는 뜻과 형보다 정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먹을 벼루에 천천히 가는 것, 먹과 물의 긴밀한 만남을 주도하는 행위 속에 깊은 뜻을 풀어가는 이것만으로도, 좁게 해석해도 서예다.
또한 서예의 이론 중 하나인 向背(향배)가 있다. 한 화면에 같음을 피하는 방법으로, 서로 등을 지게 하는 조형 원리를 말한다. 나의 작업에서 공간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원리로서 적용하고 있다.
특히 서예에서 점을 찍을 때 잊지 않고 살피는 것으로, 살아 있는 점을 표현하는 방법은 정지된 단면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산비탈길에서 바위가 굴러 내려오는 것처럼 표현하려는 입체적 중요한 관점을 살렸다.
한 점, 한 점을 먹물에 담그는 과정은 깊은 몰입의 경지에 이른다. 서예를 하는 과정에서 한 글자를 쓰고 다음 글자로 넘어가는 운필의 과정도 마찬가지로 살아 움직임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할 나위 없는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고, 탄력 있는 내면의 근육을 만드는 일이다.
나에게 그림이란 내 영혼의 힘을 점 하나, 획 하나에 모으려는 의지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이런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성실함은 나의 마음 한가운데서, 나의 힘으로 나의 마음의 빛을 환하게 밝히려는 의지가 된다.
해탈과 구도가 함께 있는, 늘 깨어 있기 위한 자연스러운 수행의 과정이다.
나는 먹을 통해 비밀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언어 이전의 그 무엇과 언어를 넘어선 언어, 또한 언어의 없음으로부터 시작한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언어로서 다 드러내지 못한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마음의 풍경 속에 밝은 빛이 되도록...
이것이 ‘자성의 길’이다.

정광희, 무제 100x170cm 한지에 수묵 2012
어질고 넉넉한
김기현
한없이 비우고 한없이 품어내는 김기현 달항아리전 '어질고 넉넉한'
유난히 밝은 만월 아래, 사물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유독 빛을 띠듯, 달은 푸근하고 넉넉한 서정을 전한다. 그러한 인심 좋은 달을 닮은 달항아리는 우리 도자사에서 조형미의 극치로 평가받는 독창적인 유산이다.
조선시대 정치 이념으로 작용했던 유교 문화는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고 순박한 미감의 달항아리를 탄생시켰다. 달이 기울면 다시 차오르듯이, 온전히 비워내야 이내 가득 채울 수 있을 테다. 비움은 욕심을 덜어내는 과정일 뿐 아니라, 포용력과 어진 마음처럼 타인의 삶을 어루만질 수 있는 관용과 여유를 내포한다. 그 옛날 우리의 선비들은 달항아리를 보며 생의 가치를 상기했을 법하다.
쓰임의 가치를 넘어선 이러한 정신성의 구현은, 여전히 달항아리가 한국미의 원형으로서 인문학적 혹은 예술적 영감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30년 넘게 도예 작업을 지속해 온 김기현은 달항아리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전통의 방식 그대로, 두 개의 큰 사발을 이어 붙이는 성형 방법을 고집하는 작가는 장작가마 소성을 거쳐 달항아리를 제작한다.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현대식 가마와 달리, 하루 이틀 밤낮을 꼬박 사람이 지키며 불길의 온도를 맞춰야 하는 장작가마 소성은 전기와 가스 가마에 비해 깊은 색을 내며 예술성을 배가시킨다.
오롯이 불과 목재, 바람의 변수로 이루어지는 탓에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요변(窯變) 현상을 수반하며, 그 우연의 효과는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의 빛이 결코 같을 수 없듯이, 달항아리의 빛깔 또한 어리숙하면서도 완만한 비정형의 기형과 더불어 각양각색의 미감을 자아낸다.
달항아리가 지닌 빛깔과 선의 오묘함은, 이성에 기반한 서구의 미감처럼 정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어느 공간에 놓아도 주변을 하나로 아우르는 힘을 지닌다. 이러한 포용력과 넉넉함이 김기현 작가가 달항아리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선비의 문갑 위에, 어염집 찬장의 한켠에 두둥실 자리했던 달항아리처럼,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네 일상을 한없이 품어내고 다독일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