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은
달빛사과
2022. 11. 09 - 2022. 11. 26
달빛사과 116.8x91.0cm, 장지에 분채, 석채, 착색박, 2018
시간과 계절의 변화 속에 명멸하는 사과
박도은은 궁극적으로 시간과 계절의 변화속에서 포착되는, 반짝이는 붉은색 혹은 녹색의 사과표면을 그에 유사한, 근사한 색/물감으로 더듬고 있다. 그러니 이 그림은 사과의 사실적 묘사나 단순한 재현에 방점을 찍은게 아니라 이른바 분위기나 정취, 무드를 적극 출하고 있는 그림인 셈이다. 물론 그려진 것은 분명 사과나무이지만 그 사과나무는 특정한 정서를 불러들이는, 환기시키는 일종의 기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과를 빌어 사과를 통해 받았던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의 파동과 흔들림을, 그것이라고 밖에는 말하기 어려운 미묘한 느낌의 총체를 불가피하게나마 시각언어로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은 단지 망막으로만 받아들일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고 느끼는 그림이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전통적인 동양의 그림이란 심안으로 헤아리는 그림이었다. 그것은 망막에 호소한다기보다는 정신적 활력과 기억에 관여하고자 한다.
그렇게 오묘한 색채와 미묘한 질감을 거느린 깊은 배경과 그 위로 미세한 균열과 흔들림을 동반한 사과와 잎사귀의 윤곽선은 섬세한 감정의 너울을 전달한다. 이 그림에서 대상의 모든 경계들은 불분명하다. 확실하고 정확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흔들리고 부서지고 깨진다. 그것들은 색채와 색채, 빛과 빛 사이에 끼여서 부대낀다. 작가는 바로 그 흔들림을, 부서짐을 그리고자 한다. 달빛아래 허물어져 내리는 사과나무의 자태와 색채, 빛의 흐름을 채색물감과 모필을 통해 공들여 전달하고자 한다. 자연이 만들어낸 지극한 아름다움의 한 경지를 자기 몸으로 수행하면서, 복기하면서 다시 그림 그리는 일이 어떤 자리인지를 묻고 있는 것도 같다. 그 물음이 더욱 깊고 융숭해지면 그림도 분명 그에 비례할 것이다.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